축제 안으로 축제를 들이다
새로운 시대는 모종의 폭발로 시작하기 마련이고, 무언가 끝날 때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된 시대일수록 폭발은 일어나기를 고대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모이고, 함께 머무르고, 연대의 형태를 실천하는 일, 무언가를 바라보기보다는 함께 있음을 즐기는 일이 된다.
축제의 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축제가 스펙터클과 동의어가 된 것, 표현과 관객, 생산자와 수용자 간에 명확한 구분이 지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수백 년 동안 축제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함께 있고 함께하는 것이었다. 유명 배우나 팝스타처럼 성공한 인물을 추앙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공해야 하는 것은 축제 그 자체, 그러니까 모두가 함께 평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간 만큼은 계급이 사라져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놓이고, 지위, 가문, 소속은 가면 뒤로 숨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축제의 시간은 무정부적이고 조직화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며,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가치 체계가 제자리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옵/신은 현대적인 형태의 축제이지만, 올해는 ‘함께하기’라는 축제의 옛 정신을 살려보고자 한다.
극장이라는 장치는 특정한 시선과 경험의 방식을 제안한다. 우리가 눈으로 공연을 보고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방식은 우리가 지구를 바라보고, 경험하고, 소비하도록 배워 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형태의 예술은 지구를 소비하고 이용하는 것이 괜찮다고 가르친다. 되돌려주지 않고 가져가는 것, 그 귀결을 생각하지 않고 추출하는 것 말이다. 과연 공연예술은 이러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돌봄, 함께하기, 친밀감, 뒤얽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대안적인 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올해 옵/신 페스티벌은 축제의 사회적이고 참여적인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작은 규모, 단일 공연장, 허물없는 형식을 선택했다. 스크린에서 익명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깥세상을 차단하거나, 익명의 관객으로 머무르다 가는 대신, 함께 모이고 서로 나누는 일이 더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올해의 축제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며, 공연을 음식, 디제잉, 워크숍, 산책, 출판 등과 함께 버무린다.
올해 옵/신에서 모이게 될 예술가, 사람들, 작품, 모임, 워크숍, 어울림은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기여다.